‘세계 기네스감’ 500만곡 음원 보유한 싱어송 라이터 가수 오준영

월드레코드 | 입력 : 2017/09/28 [19:37]

봄날 같은 겨울 주말 오후‘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을 흥얼거리며 경기도 양평 용문역에 도착하니 싱어송 라이터 가수이자 음원수집가 오준영(59)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흥을 돋우는 최고의 노하우는 단연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오준영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사람이다.

동서양을 망라한 ‘원석’같은 음원을 자그마치 500만곡이나 보유한 진기록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일이십만곡도 아니고 일이백만곡도 아니고 그 엄청난 곡을 혼자 힘으로 수십년에 걸쳐 수집해 왔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가 있다.

개인, 기관, 단체 심지어 국가가 나서도 쉽지 않은 ‘넘사벽’보유량으로 단연 세계 기네스감이다.

중년층 이상의 세대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4월과 오월의 멤버로 활동했던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음악프로듀서이자 영화음악 작곡가, 음원콜렉터. 1인 다역의 ‘멀티 뮤지션’ 오준영이 한결같이 해오고 있는 일이 이토록 많다.

그가 요즘 열정을 쏟고 있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오는 4월 오픈 예정으로 서울 동대문구 홍릉에 국내최초의 음악박물관을 추진하고 있다. 가칭 한국음악콘텐츠미디어센터 (KMCM)이다.

“K팝스타 싸이의 강남스타일, 젠틀맨이 2조 이상의 시장가치를 창출했다고 합니다. K팝 한류가 무서운 속도로 세계시장을 파고드는데 정작 한류의 본고장인 코리아에 음악박물관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가 40년째 국내외 가요와 팝의 음원을 수집하고 음악방송을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한국최초의 가수가 누구인줄 아십니까? 1919년 6월 사의찬미를 부른 윤심덕입니다. 남자가수 김개똥의 노래를 어디에서 듣겠습니까? 제가 음악을 하니까 최소한 선배뮤지션들이 무슨음악을 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음원을 수집해왔습니다”

작곡가 김희갑의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른 가수는 자그마치 171명이다. 그 중에 저작권협회 승인을 받은 곡은 21곡 뿐이다. 나머지 150곡은 협회 미등록으로 정확한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부끄러운 우리 음악계의 자화상이다.

오준영씨가 보유한 500만곡의 시장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주인 맘대로 부르는 게 값일 수 있겠지만 그가 전해들은 음원사업추진과정에서 제3사업자에 의해 2000억원대라는 수치가 거론 되었다니 그쯤 되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초대박의 주인공과 마주앉아 있다는 생각에 덩달아 가슴이 뛰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노래방수록곡을 다 합쳐도 10만곡을 넘지 않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관리하고 있는 원음이 50만곡 정도라니 그가 보유한 500만곡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 많은 곡을 수집하기까지 그가 음원 콜렉션에 올인한 역사(?)가 길다. 처음에는 음악이 좋아서 취미반 호기심반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보유한 음원 중에서 가요가 90만곡이고 팝송이 400만곡이다. 여러 곡을 분리하지 않고 한번 듣는데 1시간이 넘는 합본도 1000곡이 넘는다.

해방이전 노래도 300곡에 달한다. 평생을 뮤지션으로 살아온 그 조차 작사 작곡 가수 이름을 모르는 곡도 수두룩하다.

음원을 보관한 컴퓨터 하드 용량만 해도 40 테라바이트(TB)로 전용서버 2개가 이미 꽉 찼다. 19세부터 지금까지 음원수집에 들어간 돈만도 10억원이 넘는다고 털어놓는다. 한 분야에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없이 마음씨 좋고 구수해 보이는 첫 인상의 이면(裏面)에 장인의 집념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독기가 느껴진다.

대학을 3번이나 옮겨 다닌 끝에 겨우 졸업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어대에 들어갔다가 경희대를 거쳐 졸업은 명지대(행정학과)에서 했다.

외국어대 신입생 시절 들불처럼 번지던 민주화 운동 시위대 선봉에 떠밀리다시피 나섰다가 그의 얼굴이 현장 사진으로 찍혀 1학년도 못 마치고 제적을 당하는 바람에 이대학 저대학 옮겨 다니는 계기가 되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떠돌이 신세로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음원수집은 계속해왔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듯 500만곡을 수집한 그를 보면서 한 눈 팔지 않고 우직한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 (愚公移山)이 떠오른다.

1919년대 곡부터 수집을 해오고 있는 그는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최신 걸그룹 아이돌가수 곡들도 당연히 수집한다. 요즘에는 자녀들도 아빠인 그가 하는 일을 많이 도와준다.

국내최초악단인 조선빅타연주단곡, 국내최초 합창단인 조선여성합창단 곡도 갖고 있다. 보유한 곡이 워낙 많고 방대하다 보니 음악을 들으며 이를 분류하고 데이터베이스(DB)화 하는 작업도 만만치가 않다.


그는 싱어송라이터 가수로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오란C CM 송으로 많이 알려진‘고엽’과 하얀 면사포 작곡, 시골길 작사작곡. 초연 작곡 등 20여곡의 히트곡이 그의 작품이다.

덕분에 그는 평생 밥은 굶지 않을 정도의 저작권료가 매달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온다면서 너털웃음을 짓는다.

한 때 4월과 5월의 멤버로 활동하면서‘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로 시작하는 히트곡 ‘장미’를 불렀다.

9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고 2014년 대종상 영화음악제에서 영화음악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도 표화영, 정동기와 손잡고 물맑은 양평에서 헌터스라는 트리오를 결성하여 자선공연 등 가수활동을 해오고 있다.

요즘 그는 K팝 한류 본고장 코리아의 자존심을 걸고 문화강국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음악박물관 추진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준영씨가 작사작곡하고 가수 임성훈씨가 불러 크게 히트한 시골길 노래가 기자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 내가놀던 정든시골길 ~ 소달구지 덜컹대던 길 ~ 시냇물이 흘러내리던 ~ 시골길은 마음의 고향 ~ ~ 눈이오나 바람 불어도 ~ 포근하게 나를 감싸는 ~ 나 어릴때 친구 손잡고 ~ 노래하며 걷던 시골길 ~ ~ 아~ 지금도~ 아~ 생각나~ ]

음치인들 어떠랴! 가사를 흥얼거리기만 해도 시골길은 이미 마음의 고향으로 다가온다.

 

2016년 01월 13일


[출처] 인물뉴스닷컴

<http://www.inmulnews.com/sub_read.html?uid=5610&section=sc1&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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